(1791년)신해통공 실시;정조의 소상공인 보호정책,시전상인,난전,육의전,노론,금난전권,자유로운 경제활동으로 지역활성화에 기여.

2024. 5. 28. 21:54그날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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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당시 조선 상인사회는 시전과 난전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시전은 조선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은 상점이고, 난전은 허가를 받지 못한 상인이나 상점을 뜻한다. 이렇다보니 정부로부터 판매독점권을 허가받은 시전상인들은 권한을 악용해 물건을 헐값에 매점매석은 기본이고 난전을 불법상행위를 이유로 형조 및 한성부로 끌고가는 횡포도 서슴치 않았다. 시전상인들에겐 '금난전권'이 있었다. 말그대로 난전을 금하는 권리이다. 

소상인들은 물건을 팔거나 구입하려면 반드시 시전상인에게 넘겨야 하고 또 받아가야 한다. 오로지 시전상인들을 통해서만 유통이 될 수 있었다. 그들이 이상하게 가격을 책정하여도 어쩔 수 없었고, 만약 거부하면 처벌을 받게 된다. 조정으로부터 특권이 부여된 시전이 있었는데, 비단, 명주, 무명, 모시, 종이, 어물(베) 곧 6개 물품을 매매한다고 해서  '육의전'이라 하였다. 이 6가지는 당시 없어서는 안될 기본 생필품이였다. 특히 종이와 직물은 화폐로 통용될 만큼 아주 중요했다. 시전상인들은 금난전권을 남용하며 이런 필수품을 독점하였고, 난전은 물론 백성들의 고통도 컷다. 

시전상인들은 이렇게 소상인들에게 물건들을 헐값으로 사들여 독점권을 악용해 백성들에게서 폭리를 취했다. 필수품이다보니 백성들은 비싼 값을 치루고서라도 살 수  밖에 없었다. 금난전권을 행사하는 시전 수가 처음에는 6곳이였다가 점점 늘어나더니 18세기에는 100여곳 이상이 되었다. 판매상품 종류도 점점 많아지고, 상품을 독점한 소수의 상인에게만 이익이 집중되었다. 이렇게 시전상인과 소상인들의 갈등이 날로 심각해졌고, 이에따라 성밖으로 정조임금이 행차를 하면 소상인들의 격쟁(억울한 자가 길가에서 징이나 꽹과리를 쳐대며 임금에게 하소연하던 일종의 민원제도)이 연일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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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금난전권을 소유한 상인들은 노론계열의 정치인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상인들은 노론계열에 후원을 하며 금난전권을 유지하였으며, 반대로 수공업자 및 영세없자, 비민층 등의 삶은 나날이 피폐해져 갔다. 때문에 노론 계열의 세력을 약화시키고자 남인 집권층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전통적인 육의전은 제외하고, 금난전권을 폐지하면서 일반상인들도 피해를 입지 않고 자유롭게 상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이렇게 조정에서 금난전권의 폐단이 공론화되고, 마침내 1791년 정조임금은 시전을 혁파하는 개혁의 명을 내린다. 신해통공!

"금난전권을 폐지하고 백성 누구에게나 자유로운 상거래를 허할 것이다!" 이렇게 기존의 시전이 가졌던 특권을 몰수하고 모든 상인들이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도록 한 통공정책, '신해통공'! 정조임금은 이때도 단호하게 소상인들의 편에 서 주었다. 

 

신해통공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상공업활동의 자유화를 통해 소상공인의 활동을 활성화

*소상공인을 위한 금융지원 확대

*소상공인을 위한 기술교육 제공

*소상공인을 위한 시장 개설

현대에도 이와같은 소상공인 보호와 육성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소상공인지원센터>

*소상공인진흥공단을 통해 다양한 지원제공

*소상공인특별법을 제정하여 권익을 보호

*소상공인에 대한 세금감면 및 혜택제공

*소상공인에 대한 마케팅 지원

*소상공인에 대한 교육 및 훈련 제공

정부의 이러한 정책은 소상공인의 경영안정과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고, 지역 경제활성화에도 기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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