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 6. 15:01ㆍ그날의 이야기
여전히 세도정치기의 사회혼란 속에서 기성 종교인 불교와 유교가 종교로서의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하고, 이 틈을 파고들어 외래 종교인 천주교가 점차 세력을 확대해 가고 있었다. 서학에서 유래된 천주교는 조선의 제사문화를 금지하는 등 우리 고유의 풍속을 헤치는 면이 강했기에 지배계층은 천주교의 확산을 달갑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바로 이런 분위기 속에서 경주의 몰락양반 출신인 최제우가 민간신앙과 유불도(유교*불교*도교)를 융합하여 '동학'이라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었다.
동학이라는 명칭은 서학에 대립된 것으로, 최제우는 "나 또한 동쪽에서 태어나 동도(東道)를 받았으니 도(道)는 비록 천도(天道)이나, 학(學)은 동학(東學)이다"라고 하였다. 최제우는 1824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났다. 1856년 종교적 체험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종교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시천주'사상을 바탕으로 '사람은 누구나 천주(하느님)를 모시고 있으며, 평등하고 존엄하다'는 가르침을 전파하였다.
천주를 인간의 마음속에 모시는 것을 강조하며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존엄하다고 주장(시천주 사상)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는 사상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을 강조(인내천 사상)
이 두 사상을 바탕으로 그는 '용담유사'라는 경전을 짓고 그 가르침을 전파하였다.
19세기에 들어선 조선은 사회적 불안과 혼란이 지속되었으며, 농민들도 세금과 부패로 인해 고통받고 있었다. 또한 외세적으로는 서양 열강과 일본의 침략위협이 가중되던 시기였다. 이에 동학에서는 계급제도의 폐지와 평등한 사회를 지향했으며, 빠르게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많은 농민들이 동학의 가르침에 동참하였다. 이런 배경속에서 동학은 단순한 종교라기 보다는 어지러운 정치와 사회를 바로잡고, 힘겹게 살아가는 민중들의 생활을 구제하려는 반봉건 운동이랄 수 있으며 또한 외구열강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구하고 편안하게 하기위한 반외세운동의 성격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또 이 당시 서구에서는 기독교가 널리 전파되며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교리로 전파되는 과정이였는데, 이에 우리 민족의 고유의 정신과 우수성을 공부한 최제우는 서양의 이러한 학문과 종교에 반하는 예수가 아닌 자신이 하늘의교시를 받아 그를 전하였다고 한다. 또한 영적인 힘을 얻어 아픈 사람도 치료하는 힘도 발휘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자신이 동쪽에서 태어나 하늘의 도를 받았으니 이를 하늘천과 도도자를 써서 '천도'라 하였고, 동학은 후에 '천도교'라 불리게 된다.
그러나 조선정부는 동학을 이단으로 취급하며 탄압하였다. 양반중심의 신분제를 부정하는 동학이 조선사회의 근본질서를 무너뜨릴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고, 동학의 최고교주 최제우를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속이는 자라고 칭하며 그를 잡아 처형하였고, 동학을 탄압하였다.
하지만 최제우의 동학은 그의 죽음으로 사라지지 않았고 그 교세가 더욱 확장하여 '교조신원운동'으로까지 전개되었다. 교조신원운동은 최제우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고 그의 명예를 회복하려는 운동이였다. 동학은 훗날 1894년 전봉준을 중심으로 한 동학농민군이 봉기하여 부패한 관료들을 몰아내고 외세의 침략에 맞서고자 했던 '동학농민운동'으로 영향을 미쳤고, 20세기 초 손병희에 의해 천도교로 개칭되고, 더욱 조직적으로 발전하였으며, 천도교는 3*1운동 등 독립운동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