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서울대학교 전신 "경성제국대학"설립,정의부 "조선청년총동맹";교육이념을 벗어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고 정체성을 왜곡. 훗날 민주화운동의 전신이 된 조선청년총동맹 활동.

2024. 8. 27. 13:14그날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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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제국대학_종로

1924년에 일제는 서울에 "경성제국대학"을 설립한다. 일본제국이 식민지 통치를 강화하기 위해 설립하였으며 일본 제국주의의 학문적, 정치적 의도를 반영한 당시 조선에서 유일한 제국대학이자 조선인과 일본인을 함께 수용한 고등교육 기관이였다. 일본정부는 조선인 중에서도 일본의 식민통치를 수용하고 협조할 지식인 계층을 양성하여 친일적 인재를 육성하고 일본의 문화와 이념을 주입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경성제국대 법문학부

경성제국대학은 설립 당시 법문학부와 의학부 두 개의 학부로 시작하였으며, 이후 이학부가 추가되었고 각각의 학부에서는 법학, 문학, 의학, 자연과학 등의 학문을 교육하였다. 교수진은 조선인 교수도 있었지만 대부분 일본인으로 구성되었으며, 학생들도 초기에는 대부분 일본인이였으며, 점차 조선인 학생 수가 늘어날수록 조선인과 이본인 간의 차별이 존재하였다. 경성제국대학에서는 일본의 학문적 전통을 조선에 이식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으며, 대부분 조선을 식민지로서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한 연구에 초점이 맞춰졌다. 조선인을 일본화하는데 중점을 두었으며, 일본의 국가이념인 천황제와 일본 중심의 역사관을 주입하는 교육으로 나타났다. 

서울대캠퍼스 입구

경성제국대학은 교육의 이념을 벗어나 식민지 지배를 위한 도구로서 조선인에게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고, 그들의 정체성을 왜곡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1945년 일본의 패망과 함께 해체되었으며, 그 자산과 인적자원은 해방 후 한국 정부에 의해 [서울대학교]로 재편되었다. 오늘날 서울대학교는 대한민국의 최고의 국립대학이며, 경성제국대학의 유산을 계승하면서도 대한민국의 고등교육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그리고 1970년 3월 21일 관악산 서북지역 100만평을 공식 선정하여 기존 종로에 있던 자리에서 이전하기 위해 '서울대학교설치령'을 제정하여 1975년 1월 21일 관악캠퍼스로 이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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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 1924년, 중국 만주지역에서 항일독립운동 단체인 '정의부'가 설립된다. 이들은 주로 만주 일대에서 활동하였으며, 대한독립군단 등 여러 독립운동세력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만큼 군사적활동을 통해 독립을 쟁취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만주 지역에서 일제에 저항하는 여러 전투를 벌였으며, 동시에 만주 지역에 거주하던 조선인들의 자치를 위해 노력하였다. 정의부는 단순한 항일무장조직에 그치지 않고 행정조직을 갖추어 자치적 정부의 기능도 수행하였으며, 자치구역 내에서 법과 질서를 유지하고 교육과 경제활동을 통해 지역 사회 발전을 도모하였다. 이후 정의부는 다른 항일 조직들과의 통합을 이루어 남만주 여러 단체들과 연합하였으며, '신민부' '참의부'와 함께 3부 체제를 형성하였다. 이들은 이후 통합하여 [조선혁명군]으로 발전하게 된다. 

정의부에서 파생된 '조선청년총동맹'은 말 그대로 청년운동조직으로 청년들을 중심으로 반일운동을 전개하였다. 일제강점기 동안 조선인들의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독립운동에 참여하며, 조선청년들의 독립의지를 강화하고 조직적으로 결집시켜 항일투쟁에 동참시키는 목표로 활동하였다.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및 선전활동을 통해 독립의 필요성과 일본제국주의의 부당함을 알렸고, 학생운동과 협력하여 1926년 [6*10만세운동] 등 대규모 항일운동에 참여하였다. 이 조직은 조선 전역에 지부를 두었으며, 각 지역의 청년들을 규합하여 조직화하였다. 조선청년총동맹은 정치적활동 외에도 노동운동, 농민운동 등 사회운동에도 깊이 관여하였다. 크고 작은 열어 독립운동에 가장 앞장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훗날 대한민국의 독립과 민주화 운동의 토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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