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3. 16. 22:03ㆍ그날의 이야기

기사환국 당시 본처 인현왕후를 궁에서 쫓아내고 애첩 장희빈을 왕비에 올려놓은 숙종. 조선왕조실록에서 유일하게 "미색이 뛰어나다"라고 기록되었을 만큼 장희빈의 미색이 엄청나긴 했었나보다~ 그래서 과감하게 환국을 일으키며 본처까지 쫓아내고 그 자리에 올려놓을 만큼 숙종의 눈이 돌아버렸겠지... 어쨋든 궁내 안방을 차지하게 된 장옥정. 그녀는 이제 두려울 것이 없었다. 게다가 그녀의 뒤에는 서인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은 남이들이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있다.

궁에서 쫓겨난 인현왕후는 폐비의 절차도 없이 일반 평민들처럼 소보교를 타고 궁을 나섰으며 그녀를 뒤따르는 인물도 상궁 한사람과 시녀 두어명 뿐이였다고 한다. 그래도 한때는 국모였는데, 이 얼마나 초라한 광경인가... 그렇게 쫓겨난 인현왕후 민씨는 친정인 안국동 감고당에서 혼자 지내며 죄인생활을 했다. 사람들과의 내왕을 일체 금하고, 아랫채를 쓰며 문짝에 창호지 한장 바르지 않고 잡초도 무성하게 자란 마치 폐옥에서 그렇게 쓸쓸히 보냈다고 한다.

장희빈이 왕비가 된 지 벌써 5년차 ~ 그녀의 나이도 벌써 스물아홉이다. 아무리 미색이 빼어난 여자라 할 지라도 나이는 속일수 없을 것이며, 당시엔 그 나이면 벌써 손주까지 볼 나이 아니였을까(손주까진 좀 오번가??). 숙종도 아직은 팔팔한 나이인지라 이젠 희빈에게 질렸는지 슬슬 다른 여인들을 가까이 하였고, 희빈은 숙종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했다. 그녀는 질투의 화신이다! <수문록>에 의하면, 숙종이 잠에서 깨어 이상한 느낌에 장희빈의 처소에 가봤는데, 담장 밑 큰 항아리가 엎어져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래서 똑바로 세워놨더니 그 안에서 한 여성이 결박당한 채 온몸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임신한 여성이였다. 알고보니 그녀는 숙빈 최씨였다. 희빈은 임신한 그녀를 불러다 죽을 정도로 매질을 했는데 숙종이 이를 제 때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그대로 죽었을 것이다. 장희빈은 숙종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벌인 일일테지만, 그러한 사건들은 점점 숙종의 마음이 그녀에게 질리고 멀어지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그래도 명색이 중전(국모)인데... 이때부터 숙종의 본처인 인현왕후를 내쫓은 걸 후회하게 된다. 게다가 지금은 남인세력과 장희빈의 오빠 장희재의 세력이 꾀나 커져버렸다. 항상 신하들의 힘이 커지는 것을 견제하던 숙종은 장희빈쪽으로 세력이 기우는 것을 견제했을 것이다.

숙종은 그렇게 지난 날을 후회하며 궁궐을 거닐다가 한 궁녀의 방에 불이 켜진 것을 발견한다. 그곳에서 무수리 최씨가 폐위된 인현왕후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고 있었는데, 그토록 떠난 상전에게 의리를 다하는 최씨를 어여삐 여긴 숙종은 그날밤 최씨와 함께 밤을 보낸다. 이때부터 왕의 총애를 받게 된 숙빈 최씨에게 자연스레 서인세력이 함께 하게 된다. 또한 출신이 미천한 숙빈 최씨로써도 왕의 총애를 받는다하여도 홀로 성공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서인세력을 등에 업고 폐위 된 인현왕후의 복위를 꾀했다. 그래서 숙빈 최씨는 숙종에게 인현왕후의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고 이에 숙종의 마음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당시 정치적 상황을 살펴보면, 기사환국을 계기로 서인세력들이 조정에서 물러나게 되고 또한 그들의 수장인 송시열도 죽어나간 상태다. 이런 상황에 자연스레 남인들이 정권을 쥐게 되었고 그들이 옹립한 장희빈이 중전까지 되었다. 헌데, 남인측은 지금까지 실세를 쥐고 있으면서 집권세력으로써의 업적도 뭐도 없었고, 그저 임금의 뜻에 순종하는 자세로 소극적인 정치를 해오고 있다. 상당히 계산적이고 야망이 큰 숙종 입장에서는 지금의 남인들이 꾀 맘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중전에 오른 장희빈도 국모로써의 면모는 전혀 보이지 않고 그저 질투심에 눈이 멀어 항상 말썽만 일으키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왕의 총애를 입게 된 숙빈 최씨를 중심으로 서인세력들이 모이기 시작하며 서서히 재기를 꿈꿨다.

어느날, 우의정 민암과 공조판서 유명현은 노론과 소론이 민심을 불안하게 하는 풍문을 퍼뜨리고 다닌다는 밀고를 받는다. 숙종은 이들을 모두 체포하여 의금부에서 엄히 조사하고 엄중한 형벌을 쓰라고 명했다. 결국 끌려와 취조받던 중 이시도가 한중혁 부자가 남인을 제거할 목적으로 남인의 3대장들이 종실 의원군을 왕으로 세우려한다는 무고를 하려 했다고 증언한다. 그런데 노론측 김인이 장희재, 이의징, 목창명 등이 역모를 꾀한다고 역고변을 한다. 이로써 숙종은 모든 것을 뒤집을 명목으로, 대신들과 삼사를 모두 남인에서 서인으로 교체시키고, 남인인사들을 대거 먼 지방으로 유배보내버린다.

다음날, 숙종은 집권여당인 남인을 정게에서 전면 축출하고, 야당으로 있던 소론의 집권체제로 다시 전환하되, 기사환국 때 축출시켰던 일분 노론을 남인의 감찰수사역을 전담시킨다. 이 갑술환국을 계기로 남인세력은 힘을 잃어 다시 만회하지 못했다. 다시 왕비의 자리에 돌아온 인현왕후는 얼마 후 사망한다. 이를 장희빈이 저주하여 일어난 일이라는 소문이 돈다. 무수리 최씨는 후궁으로써 지위가 점점 높아져 숙빈이 되었고, 인현왕후와 친분이 두터웠던 터라 숙빈 최씨가 소문에 관한 사실들을 모두 숙종에게 고하게 된다. 숙빈 최씨의 말만 듣고 눈이 돌아간 숙종은 결국 장희빈에게도 사약을 내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