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이야기(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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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대한민국 건국강령 발표;삼균주의 틀에 맞춰 미리 건국 원칙 방침 제시. 민족주의*민주주의*사회주의를 통합한 종합적인 성격. 상해 임시정부.
1941년 11월 28일, 아직은 일제강점하에 놓여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아직 독립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미리 건국원칙 방침을 제시하는 '대한민국 건국강령'을 공포한다. 조소앙이 제창한 삼균주의를 채택하여 구성하였으며, 1장은 총강, 2장은 복국, 3장은 건국 이렇게 총 22개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임시정부의 법통을 단군이래의 민족사와 3*1운동에 두고, 삼균주의 정치이상을 밝히며, 다음 광복운동을 제1기, 제2기, 완성기 이렇게 3기로 나누어 각 단계에서 해야 할 일을 명시하였다. 광복 후의 건국과정 역시 제1기 삼균제도의 강령*정책 입안, 제2기 헌법시행*삼균제도 집행, 제3기 완성기로 분류하였다. 또한 헌법 제정상의 원칙, 중앙 및 지방의 정치기구 구성원칙, 건국 직후의 경제..
2024.09.29 -
(1940년)한국 광복군 창설, 한국독립당 설립;중국 총통 장제스와 백범 김구의 인연, 한국광복군 선언문, 임시정부 지도부 '한국독립당'.
194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항일 무장투쟁을 더욱 적극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독립군을 조직할 필요성을 느낀다. 당시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인해 중국과 우호적인 분위기가 조성된 상황이였는데, 이에 중국의 장제스와 김구는 공동의 적 일본제국에 맞서기 위하여 인연이 맺어졌고, 5월에 장제스 총통에게 한국광복군의 활동을 승인해줄 것을 교섭*승인받아 광복군을 창설하게 된다. 처음엔 광복군의 지휘권이 중국 국민당 정부에게 있었으나 1944년 8월 임시정부로 통수권이 넘겨졌다. 한국 광복군은 중국 국민당 정부와 협력하여 군사작전을 수행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과 미국 OSS(CIA전신)와 연합하여 대일 첩보 작전에 참여하였다. 또한 1941년 태평양 전쟁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한국광복군을 주축으로 대..
2024.09.26 -
(1938년)일제 국가총동원령 선포~지원병제 제정, 조선 의용대 창설; 식민지 조선을 아주그냥 쥐어짜기 시작한 일제의 만행! 남자는 군인으로 여성은 군수공장으로 강제 징용되어...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전쟁에 미친 일제는 국방력을 강화하고 전쟁에 쓸 무기들을 만들기위해 당시 식민지였던 조선을 아주 그냥 쥐어짜기 시작한다. 토종 개 삽살개를 다 잡아다가 방한복을 만들고, 교회와 학교 및 절에 있는 종까지 모두 끌어다가 금속이란 금속으로 총알 만들고 심지어 나이먹은 노친네부터 어린 학생들까지 모두 징용*징병*학도병으로 끌고간다. [국가 총동원령 선포] 후 진짜 우리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1938년 4월에 '국가 총동원법'을 제정하여 모든 인적*물적 자원을 전쟁에 동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이 법에 따라 조선의 인력, 물자, 산업 등이 일본의 군사적 요구에 맞춰 동원되었고, 농업생산물과 공산품의 수탈이 본격적으로 일어났다. 조선의 많은 남성들이 공장 노동자로 또 군인..
2024.09.24 -
(1937년)보천보 전투;김일성의 빛나는 업적? 결론은 소련 따까리...남한과 북한의 생각차이. 남한과 북한의 처참한 증거명으로만 남은 '보천보전투'.
1930년대 초, 만주지역에서 활동하던 조선 독립운동가들과 중국 공산당은 '동북항일연군'이라는 항일 무장조직을 형성하고 일제에 맞서 싸워오고 있었다. 이때 지도자가 바로 김일성이다. 당시 일본은 1931년 만주사변을 겪고 한반도와 만주일대에 대한 지배체제를 강화하였다. 일본은 한반도 내 민족주의와 독립운동을 강력히 탄압하였으며, 항일 세력은 만주를 기반으로 일본군과의 전투를 계속하고 있었다. 1937년 6월 4일, 김일성이 권총으로 신호탄을 쏘아올림으로써 동북항일연군 유격대는 함경남도 보천보 지역에서 경찰서와 여러 일본 통치기관들을 공격하고 불태웠다. 일본군은 즉각적으로 대응해 추격전을 벌였으나, 동북항일연군 유격대는 산악지형을 이용해 빠르게 치고 빠졌다. 이 전투에서 일본군의 피해는 크지 않았지만, ..
2024.09.10 -
(1931년)조선어학회 창립, 한인애국단 수립;우리말 보존, 한글맞춤법 통일 및 <우리말큰사전>,영화 말모이, 백범 김구, 윤봉길, 이봉창 의거. 광복군 창설의 기반.
1931년엔 일제가 조선인들에게 한국어와 글을 사용하는 것을 단속하고 금지시키고 일본어 사용을 강제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지식인들은 일제의 눈을 피해 우리 모국어를 살리고 보존하기 위해 희생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다가 1931년에 이윤재, 이극로, 최현배 등의 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조선어학회'가 창립되었다. 원래 1921년에 조직된 단체 '조선어연구회'가 모태가 된다. 조선어학회는 우리 한국어의 연구와 보존, 보급을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며, 그 안에 표준어를 정립하고 맞춤법을 통일하고, 국어사전 편찬 등 주요과제를 이루어나갔다. 1933년 조선어학회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발표하였고 이것은 현대 한국어 표준 맞춤법의 기초가 되었다. 또한 [조선말 큰사전]을 편찬하였는데 이것은 안타깝게도 일제의 ..
2024.09.05 -
(1926년)대한제국 순종황제 사망~'6·10만세운동', 정우회 선언, 조선 민흥회 창립;순종의 사망은 다시 독립의지를 불태우고 전국 만세시위로 이어지다. 신간회가 창립되어 좌파와 우파가 합작으로 독립전선을 구축하다.
1926년 4월 25일,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인 순종이 사망한다. 순종의 장례식은 민족의 일제에 대한 저항의 기회를 제공했으며, 이로 인해 6*10만세운동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6*10만세운동은 조선3대독립운동으로써, 순종 장례일을 기해 만세시위로 일어난 학생중심 민족독립운동이다.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에 사회*정치적 이념차이를 초월해서 민족주의성향 학생들과 사회주의성향 학생들이 연대해 일으켰으며, 순종황제의 인산일을 맞아 중앙*중동학교, 연희*보성전문 등 학생들이 제2의 3*1운동으로 민족의 독립의지를 내외에 과시하자는 뜻에서 장례 행렬을 따라 일으켰다. 이후 전국으로 확산되어 고창, 순창, 청주, 평양, 홍성, 공주, 울산, 군산, 전주, 하동, 당진, 강경 등으로 퍼졌으며, 시위와 동맹휴학 등을..
2024.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