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이야기(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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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공산당 창당 그리고 마쓰야협정;최초 공산당 김재봉,김일성,박헌영/뿔뿔이 흩어진 독립운동가들.
1925년 4월 25일, 당시 공산주의 단체인 '화요회'와 일본유학생계의 '북풍회' 그리고 그 외 구성원 19명이 서울에서 [조선공산당]을 창당하였다. 당 조직은 책임비서에 김재봉, 조직부장 조동우, 선전부장 김참 등이였다. 원칙적으로 동일선상에서 늘 경쟁관계였던 그들이였지만 함께 좌파세력 확충에 힘쓰면서, 이미 민족주의자들의 각 종 기성단체에 침투하여 분할공작과 사상, 노동, 청년 등의 새로운 단체를 조직하는 방해를 벌였다. 이것을 결성하는 모체는 한국내 공산당 결성의 밀명을 받고 서울에 잠입한 김재봉이였다. 그는 1923년 6월 서울에 설치된 '코민테른(Communist international,공산주의 인터내셔널 또는 제3인터내셔널)의 책임자였다. 공산당을 결성하고 신문에 창당게시글을 올렸다. [조..
2024.08.31 -
(1924년)서울대학교 전신 "경성제국대학"설립,정의부 "조선청년총동맹";교육이념을 벗어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고 정체성을 왜곡. 훗날 민주화운동의 전신이 된 조선청년총동맹 활동.
1924년에 일제는 서울에 "경성제국대학"을 설립한다. 일본제국이 식민지 통치를 강화하기 위해 설립하였으며 일본 제국주의의 학문적, 정치적 의도를 반영한 당시 조선에서 유일한 제국대학이자 조선인과 일본인을 함께 수용한 고등교육 기관이였다. 일본정부는 조선인 중에서도 일본의 식민통치를 수용하고 협조할 지식인 계층을 양성하여 친일적 인재를 육성하고 일본의 문화와 이념을 주입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경성제국대학은 설립 당시 법문학부와 의학부 두 개의 학부로 시작하였으며, 이후 이학부가 추가되었고 각각의 학부에서는 법학, 문학, 의학, 자연과학 등의 학문을 교육하였다. 교수진은 조선인 교수도 있었지만 대부분 일본인으로 구성되었으며, 학생들도 초기에는 대부분 일본인이였으며, 점차 조선인 학생 수가 늘어날수록..
2024.08.27 -
(1923년)조선물산장려회 창립, 육군 주만참의부, 신은행령;"우리가 만든 것 우리가 쓰자",조선 경제적 자립을 막기위한 일제의 만행.
일제는 우리나라의 쌀을 헐값게 사가고, 반대로 일본에서 생산된 물건들을 조선에 팔았다. 대량생산 된 일제의 제품들이 밀려들어오자 국내기업의 제품들이 경쟁에서 밀리게 되자, 민족의 경제적 자립을 도모하기 위해 '조선물산장려회'가 설립되고 [우리가 만든것 우리가 쓰자]라는 표어를 걸고 '물산장려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국내의 자본력을 키우고, 조선의 경제적 독립을 위해 각계각층 인사들이 뜻을 모았다. 물산장려운동은 쉽게 말해 우리 제품을 애용하자는 운동이다. 일본 상품 배척과 함께 조선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단순히 상품애용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조업을 발전시키고 중소기업을 지원하며 민존 자본을 육성하는데 힘썼다. 서울에서 시작해서 전국적으로 활대되었으며 특히 여성과 학생들의 ..
2024.08.25 -
(1921년)자유시 참변, 조선어연구회;독립군부대 간의 허탈한 쟁탈전,러시아 적군의 힘을 빌려 반대파 제거?...홍범도장군,주시경선생,말모이,우리말큰사전 등.
1919년 3*1운동 이후, 수많은 한국 독립운동가들은 중국이나 러시아로 이주해 무장 독립운동을 펼치고 있었다. 이들은 일제의 압박을 피하고 무장투쟁을 계속하기 위해 러시아 소비에트 정부와 협력할 수 밖에 없었다. 참고로 러시아로 이동한 독립군부대는 대부분 사회주의 계열이였다. 이들 가운데에도 파벌이 나뉘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러시아 적군의 힘을 빌려 반대파를 제거하고 독립군부대의 지휘권을 강탈하려 한 자들도 있었는데, 이렇게 해서 벌어진 사건이 '자유시참변'이다. 러시아혁명 이후, 볼셰비키 정부는 한국 독립군을 지원하며 무장시키고 훈련 서비스까지 제공했다. 그리고 수많은 독립군 부대들이 러시아 극동 지역 '자유시(현재 '스보보드니')'에 집결하였다. 이때는 독립군 내부에서 저들끼리의 사상..
2024.08.23 -
(1920년)한국독립운동지혈사,회사령철폐,산미증식계획 실시,진주 소년회;백암 박은식,소파 방정환,어린이날 지정,어린이잡지,'어린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
1920년, 박은식은 한국독립운동사(韓國獨立運動之血史)라는 일제강점기의 한국 독립운동사를 기록한 책을 편찬하였다. 이 책은 독립운동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후세에 전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상하이 유신사에서 간행하였다. 한국 독립운동의 주요사건들, 인물들 그리고 독립운동의 경과를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당시 일제의 탄압속에서도 독립운동의 정신을 보존하고 계승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근대적 역사 서술 방식에 의하여 쓰인 한국 최초의 독립운동사 개설서로 와 더불어 민족주의사학이 이로부터 본격적으로 정리되기 시작한 이정표로 평가받는다. 과거 1910년에 일제는 '회사령'을 공포하여 한국에서의 기업 설립을 엄격히 통제해왔다. 한국인들이 기업을 설립하려면 조선총독부의 허가를 받아야 했으며, 이는 한국인들의..
2024.08.21 -
(1920년)봉오동전투,청산리대첩,간도참변,훈춘사건;홍범도장군,김좌진장군,만주지역 무장투쟁,북간도,백운평전투,어랑촌전투,일제의 만행,잔인한 학살 등.
봉오동전투, 청산리대첩, 간도참변, 훈춘사건은 모두 1920년대 초반 일제강점기 시기에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서 벌어진 중요한 사건들로, 일제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고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한국 독립군의 활발한 활동과 일본군의 보복이 얽힌 역사적 맥락을 담고 있다. 3*1운동 이후 만주 지역으로 많은 독립군이 이동하여 무장투쟁을 준비한다. 일본군은 만주지역에서 독립군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대규모 군사작전을 추진하는데, 1919년8월 이후 국내 진공작전을 펼치던 홍범도의 대한독립군은 북간도 지역 독립군의 통일과 연합에 나서고, 일본군에 대항하여 1920년6월 홍범도의 대한독립군과 국민회군, 군무도독부가 연합하여 대한북로독군부를 결성하였다. 이때 대한신민단의 독립군 부대가 함경북도 종성군 강양동에 진입해 일본..
2024.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