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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4년)영창대군 사건으로 관직을 버리고 은거하며 조선 최초 백과사전 '지봉유설'을 편찬하다. 실학사상, 군자의 나라, 무궁화 등.
이수광(1563~1628년)은 조선 중기 학자다. 아버지는 병조판서를 역임하셨고, 1585년에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가 되었으며, 1590년 성절사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우도방어사 조경의 종사관으로 종군했으며, 함경도에서도 이반한 민심을 돌이키는데 공을 세웠다. 1597년엔 성균관대사성이 되었으며 진위사로 다시 명나라에 다녀왔고 그곳에서 안남(베트남) 사신과 교류했다. 1611년 왕세자의 관복을 청하는 사절단의 일원으로 또 명나라에 갔는데 그곳에서 섬라(태국) 사신을 만나 그들과 교류하고 그곳의 풍속을 기록했다. 1613년에 계축옥사가 일어나자 사직하였고, 다시 1616년에 순천부사가 되어 임기를 마치고 수원으로 이주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2024.02.28 -
(1608년)광해군 즉위;대동법,중립외교정책,친형 임해군,이복동생 영창대군,인목대비,'인조반정' 쿠데타 ~
광해군은 1575년 선조와 공빈 김씨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형 임해군은 임진란 때 가토 기요마사 덕분에 일본에도 잘 알려진 개망나니였다. 선조는 이런 개망나니 장남은 아예 없는 놈 취급하고, 광해군과 영창대군 사이에서 누굴 세자로 책봉할지 고민이였다. 장남 임해군이 개망나니였다면 영창대군은 선조가 가장 사랑했던 중전이 낳은 적자라는 점 빼면 머 대단할 것도 없었다. 어쨋든 그들 중 가장 자질이 뛰어났던 광해군이 선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으니 그나마 다행이였을 것이다. 전란 중에 파천(피난 준비)해야 하는 다급한 상황에서, 종묘사직의 미래와 민심수습을 위해 왕세자를 책봉해야만 했는데, 선조는 "광해군이 총명하고 학문을 좋아하여 그를 세자로 삼고자 하는데 경들의 뜻은 어떠한가?"라는 물음에 신하들은 전폭..
2024.02.27 -
(1597년)정유재란 발생, 명량해전, (1598년)노량해전;이순신,이순신 전사,정유재란 원인*결과,귀무덤,도요토미 히데요시 사망,도쿠가와 이에야스 집권, 후금 탄생, 위안부 결부 등.
정유재란이란 정유년에 일어난 난을 의미하며, 왜구가 다시 재침략한 전쟁이다. 당시 휴전이란 개념은 딱히 없었지만, 당시 일본과 명나라 사이의 강화협상 중 서로에게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여 파토나고 왜장 가토 기요마사 등이 본토의 예비대인 14만의 대군을 이끌고 재침략한게 정유년이였다. 본래 임진왜란의 일부 스토리이긴 하나, 이순신 영화 "명량"을 보면 그 내용이 잠깐 나오는데, 원균이 칠천량에서 수군을 다 말아먹어서 정유년에 전라도가 왜군 손에 떨어진다. 그래서 규모가 커져 별도로 "정유재란"이라 명칭을 붙이게 된 것이다. 이런 급박한 상황속에서 결국 조정은 이순신을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겸 삼도수군통제사에 재기용한다. 이후 명량해전에서 이순신은 고작 12척의 함선으로 서해 진출로인 명량(울돌목)의 지형조..
2024.02.25 -
(1592년)한산도대첩,진주대첩,(1593년)행주대첩;임진왜란 3대대첩,이순신,권율,김시민,학익진,이순신장군 해전 순서,2차진주대첩 등.
한사도대첩, 진주대첩, 행주대첩을 일컬어 임진왜란 3대 대첩이라 한다. 먼저 이순신장군의 주요해전을 순서대로 나열하자면, 옥포해전~당포해전~한산도대첩~부산포해전~명량대첩~노량해전 이다. 1592년 가장 먼저 이순신 장군의 첫번째 대첩 한산도대첩이 일어난다. 한산도대첩 한산도대첩은 견내량 대첩 or 한산 대첩으로 불리기도 하며 살수대첩(을지문덕), 귀주대첩(강감찬)과 함께 한국사 전체를 통틀어 3대 대첩이라 불린다. 경남 통영 한산도 앞바다에서 이순신 장군께서 학익진을 처음으로 도입하여 펼친 전투다. '학익진'이란 원래 육상전에서 쓰던 진법인데 학이 날개를 펼친 듯한 형태를 취하고 적을 포위하듯 압박해 진격하는 진법이라서 학익진이라 불린다. 1592년 7월 이순신 장군은 판옥선을 이용하여 거짓 후퇴로 적선..
2024.02.24 -
(1592년)임진왜란 발생;원인과 영향,선조시대 정치상황, 조선과 왜의 무기 차이와 전략, 군사력의 중요성.
1592년(선조6년) 왜놈들이 조선에 쳐들어 와 '임진왜란'이 발생한다. 당시 동아시아 지역은 오랜 세월 다양한 민족들이 공존하면서 복잡한 관계를 형성해 왔는데, 특히 조선과 일본은 이웃한 국가로써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조선은 중국의 영향을 받으며 중앙집권적인 정치 체제를 갖추고 있었고, 일본은 무리한 확장 정책을 추진하며 군사적인 강화를 이루어 나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과 일본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었고, 왜구라는 일본의 정책이 조선에 큰 위협을 안겨주었다. 선조임금은 중앙집권적인 통치 체제를 구축하고, 경제와 문화 발전을 추진했다. 그러나 왜구의 빈번한 침략으로 안정적인 통치를 유지하기는 어려웠다. 일본은 왜구라는 정책을 통해 조선을 흔들어놓고자 했다. 이를 위해 일본은 조선의 ..
2024.02.23 -
(1567년)선조 즉위; (1575년)동인과 서인, (1589년)정여립의 난(기축옥사), 남인과 북인, 인조반정, 광해, 1*2차 예송논쟁, 붕당정치 등.
사림파는 고려시대에 한국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당파로써, 이들은 고려시대 중기부터 후기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활동하며 사회, 정치 및 문화 분야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사림파 분열의 원인은 다양한 사건이 있는데, 내부에서의 갈등이나 외부 요인에 의해 일어난 것이었다. 16세기 선조대에는 사림파가 조정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파벌이 갈려서 동인과 서인으로 분화하게 된다. 인사권을 쥔 이조전랑을 누가 맡을 것이지를 두고 치열하게 다퉜고, 척신을 두고 어떻게 청산할것인지에 대해 동인과 서인의 의견충돌도 있었다. 이황의 뒤를 계승한 동인은 강경론을 외쳤고, 이이를 계승한 서인은 온건론을 펼쳤다. 결국 사고방식이 맞는 자들끼리 학연,지연,지역 등으로 뭉치게 된다. 더군다나 동인은 다시 ..
2024.02.23